05/05 네팔을 떠나며
네팔 국제 공항의 면세점에서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면세점이라고 해도 두 손으로 헤아릴 수 있을 만큼 작은 규모다. 그 만큼 공항도 작다. 공항은 전체적으로 나무로 장식되어 있다. 가끔 벽돌 기둥이 보이기도 하지만, 어쩌다가 보일 뿐이다. 마치 우리나라 80-90년대 관광호텔의 로비 같은 느낌이다. 현대적인 외관으로 변신한 인도 국제공항과 비교하면 초라한 느낌이다. 하지만 현재의 네팔이라는 나라에는 이런 모습이 어울린다.
생각해보면 네팔에서 머물렀던 시간은 안나푸르나의 급류만큼 빨리 지나갔다. 그 만큼 천천히 움직인 필자의 게으름도 크다. 하지만 네팔에서는 도무지 빨리 움직여야 할 이유가 없었다. 그야말로 마음 가는 대로 천천히 이동하는 것이 이곳을 즐기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그렇다고 네팔이 마냥 좋은 곳은 아니었다. 네팔로 들어가는 입구는 험하기 그지없었다. 4월 초 다르질링의 궂은 날씨를 피해 까까르비타를 통해서 네팔로 들어왔다. 까까르비타에서 카트만두까지 올라가는 12시간짜리 버스는 거칠었다. 좌석은 접히지 않는 고정식이었고, 밤새 내리는 비는 한 줌 불편을 보탰다. 그 힘든 여정을 소화하고 나서야 카트만두를, 타메를 마주 할 수 있었다.
처음 타멜을 마주한 느낌은 '아, 깨끗한 빠하르간즈' 였다. 첫눈에 본 타멜은 빠하르간즈에 티베트 불교 풍과 등산용품을 더하면 연성 될 그런 곳이었다. 차이점이라고 하면 빠하르간즈보다 릭샤나 자동차와 소가 적었다. 그리고 빠하르간즈에 비해서 고급 카페나 숙소, 음식점이 많았다. 하지만 넘쳐나는 호객꾼들과 마약꾼들은 빠하르간즈와 비슷했다. 다행히 타멜을 벗어나면 카트만두는 괜찮은 도시였다. 한 나라의 수도라고 생각하기 힘들 만큼 낙후된 도시지만, 그런 점도 좋았다. 타멜에서 20분 정도 떨어진 더르바르 광장의 어수선함도 마음에 들었다. 스와얌부나트나 마하보트 스투파들이 보여준 네팔의 얼굴도 좋았다. 그리고 카트만두에서 떨어진 박타푸르나 티미에서 볼 수 있는 전통적인 모습도 괜찮았다. 암튼 네팔에 처음 들어오는 여행자들에게 카트만두는 돌아다니면 괜찮은 도시로 보인다. 물론 타멜에서 충분히 만족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쇼핑하기 좋다나.)
카트만두를 떠나 두 번째로 머문 곳은 포카라였다. 이 곳은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위한 도시로 매년 많은 여행자들이 몰린다. 그 덕분에 페와호수 옆의 레이크 사이드 지역은 여행자들을 위한 숙소와 상점들이 가득하다. 필자가 머문 곳은 그곳과 좀 떨어진 댐 사이드였다. 처음에는 안나푸르나 트레킹 허가서를 받으러 사무실을 찾았다가 근처에 있는 한인 숙소에 잠시 놀러 갔다. 잠시 놀러 갔던 것이 무려 13일이나 머물게 되었다. 사장님 말씀으로도 최장기 기록을 갱신했다고 한다. 안나푸르나 캠프 트레킹 일정까지 포함하면 거의 20일 정도를 포카라에 있었다. 30일 동안 있었던 네팔 일정을 생각하면 넘치고 차도록 포카라에 있었다. 하지만 그 만큼 포카라가 좋았다. 카트만두보다 공기가 깨끗하고, 자연이 좋았다. 물론 머물렀던 숙소에서 만났던 사람들도 좋았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재미를 오랜만에 알게 되었다. 좋은 말도 많이 들었고, 좋은 생각도 많이 생겼다. 게다가 여행 중간에 한국어 책을 많이 읽어서 좋았다.
그리고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 트레킹 역시 좋은 경험이었다. 처음 해보는 장기 트레킹이었지만, 포터 없이 갔었다. 13KG 정도의 짐을 짊어지고 7일 정도 걷는 코스였다. 하늘까지 이어질 듯한 계단 앞에서 절망했던 적도 있었지만, 무사히 완주했다. 그 덕분에 얻은 성취감도 컸지만, 트레킹 중간에 체감했던 깨달음에 더욱 만족했다. 아무리 어려워 보여도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트레킹이었다. 역시 머리로 알고 있는 것과 몸으로 깨닫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하지만 포카라가 마음에 들게 해준 가장 큰 공로자는 숙소 사장님이었다. 오랜만에 놀러 간 친척 집 같은 느낌의 숙소는 편안하고 행복했다. 그런 사장님 덕분에 10달에 다시 이곳을 찾아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때 오면 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 트레킹과 안나푸르나 라운드 트레킹을 할 생각이다. 좋은 동행이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혼자라도 할 생각이다. 이제 혼자 가는 길에 외로워하지 않고 걸어갈 수 있는 여행자가 되었다.
그리고 네팔에서 얻은 가장 큰 소득이라면 미래에 대한 계획이 어느 정도 세워졌다는 것이다. 그 동안 내가 보고 있던 세상이 얼마나 좁은지 알게 됐고, 좀 더 넓은 시각에서 세상을 볼 수 있었다. 왜 나는 이상을 위해서 내 생활을 포기할 생각을 했을까. 진짜 성숙한 이상론자라면 이상을 위해서 생활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깨달음을 얻는 데에 큰 공헌을 한 김어준씨와 오시이 마모루 감독에게 감사를 표한다.
내가 걸어야 할 길. 그것은 B급 좌파였다. 계속 부정하고자 노력했지만, 나는 좌파다. 부조리한 사회 구조에 화 낼 줄 알고, 그런 사회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회나 생활을 전면적으로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속에서 힘을 길러, 내부에서 바꿔나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힘이다. 자본주의적 단어를 꼽자면 돈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직업은 나의 이상을 만족함과 동시에 나의 만족감을 충족시키는 아주 좋은 직업이다. 이것 만큼은 다시는 부정하지 말아야 겠다.
잊지말자,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다.
2012/07/05 - [2012 네팔 여행] - 04/29 어느 특별한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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