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29 어느 특별한 하루
그동안 ABC 트레킹의 여파로 숙소에서 계속 휴식을 취했다. 게다가 트레킹 코스에서 만났던 사람들과의 뒷풀이의 여파로 휴식은 더욱 길어졌다. 그러던 중 어제는 숙소 사장님의 제안에 따라 직원 MT를 따라갔다. 숙소에서 짐을 챙기고 2시 정도에 출발해서 1박하고 오는 일정이었다. 일행은 사장님과 숙소 스태프, 스태프의 자식과 조카들이었다. 거기에 한국인 3명이 포함됐다. 특별히 챙겨야 할 것은 없었고, 침낭에 세면도구만 챙기라고 하셨다. 묵고 있는 방에서 주섬주섬 짐을 챙겨 나오니 마당에 짐이 한가득 이었다. 텐트, 프로젝트, 스피커에 식재료까지 합하니 양이 상당했다. 그 많은 짐을 같이 가는 일행끼리 나눠 들고 숙소를 나섰다. 참고로 숙소는 한 투숙객 분께 맡기신 모양이다.
숙소에서 짐을 들고 15분 정도를 걸어가서 버스를 탔다. 포카라에 다니는 시내버스로 산골까지 올라가는 버스라고 한다. 오늘의 목적지는 이 버스의 종점에서 내려 30분 정도를 다시 걸어가는 곳이었다. 버스 타고 올라가는 길이여서 별 걱정은 없었다. 하지만 우리를 태우기 위해 도착한 버스는 '이보다 빽빽할 수 있을까' 라고 말하는 듯한 버스였다. 짐이야 버스 위에 실으면 되니 별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10명이 넘어가는 사람을 태우기는 너무 힘들었다. 일단 애들과 여자 분들을 태우고 남자들은 버스에 매달려서 갔다. 다행히 포카라 시내 검문소를 지나자마자 버스 지붕에 올라탈 수 있었다. 버스 지붕에는 버스가 싣고 가고 많은 짐과 양이 2마리 있었다. 닭이 있는 경우는 많이 봤지만, 양이 있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이미 지붕 일부에 실례도 해두셨고, 흔들거리는 버스 위에서 짐 위를 이리 저리 밟아두고 다니셨다.
버스 지붕은 보기에는 편했지만, 승차감은 별로였다. 짐을 묶기 위한 철책위에 앉아야 하는데, 버스가 흔들릴 때마다 엉덩이가 아팠다. 게다가 생각보다 흔들림이 심해서 철책을 붙잡지 않으면 떨어질 것 같았다. 그리고 버스는 왜 그리 자주 고장 나던지. 언덕길을 올라가는 길에 3번이나 고장이 났다. 그 때마다 짐을 내려서 올라가다가 다시 버스에 타는 촌극이 벌어졌다. 버스 종점에서 한 사람이 끙끙대며 올라가는 언덕길을 30분 정도 올라가자 마을이 나왔다. 처음에는 마을 사람들과 놀고 가는 일정인 줄 알았다. 하지만 짐을 들고 도착했던 곳은 허름한 집이었다. 그 작은 집에서 올망졸망한 아이들이 4명이 나왔다. 어른들 없이 그들끼리 살고 있다고 한다. 알고보니 사장님께서 후원하는 집 중 하나라고 한다. 직접 후원하시는 것은 아니고, 후원자와 피 후원자를 이어주는 역할을 하신다고 한다.
그 집에서 가장 역할을 하는 13살 여자애였다. 그 밑으로 4살 막내까지 한 집에서 살고 있었다. 어머니는 막내가 어렸을 때 도망갔다고 했다. 원래는 15살의 여자애가 있었다고 했는데, 할머니의 주선으로 시집갔다고 한다. 시집을 간 건지, 인도로 팔려간 건지 모르는 상황이라고 했다. 엄밀히 말하면 18세 이하의 결혼은 이곳에서도 불법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곳의 사정은 아무도 모른다. 부디 무사히 돌아오기를 빌어야지.
그런 눈물겨운 사연을 들으면서도 배가 고팠다. 예정보다 버스가 늦었고, 짐이 많아 도착이 생각보다 늦어졌다. 집에 도착했을 때,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다들 배가 고파서 식사를 먼저 하기로 했다. 저녁은 가져갔던 재료로 만든 치킨 커리에 야채 볶음이었다. 솜씨 좋은 주방장 덕분에 아주 맛있는 식사가 나왔다. 식사를 하면서 다들 네팔의 전통주인 락시를 한 잔씩 했다. 전등이 필요한 시간 쯤 되자, 다들 취기가 올라왔다. 스태프들은 아이들과 같이 원형으로 앉아 노래하고 춤추기 시작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아는 노래를 부르며 흥겹게 춤추는 그들의 모습은 정말 보기 좋았다. 한국인 일행은 그곳에 끼기 그래서 조용히 구석에서 치킨 커리에 락시를 마셨다. 그러다 아이들이 하나, 둘 잠을 자기 시작했다. 스태프들도 피곤한 모양인지 다들 고개를 자울 거렸다. 교통정리가 필요한 시기가 왔다. 아이들이 자던 집에 방을 나눠서 졸린 사람들끼리 먼저 들어가서 자기로 했다. 그리고 춤추고 노래하던 자리에 텐트를 쳤다. 얇은 텐트에 매트를 까니까 괜찮았다. 그리고 남은 사람들끼리 조용히 삼겹살을 굽기 시작했다. 숯불을 피우면 좋았겠지만, 여의치 않아서 휴대용 버너에 구웠다. 그래도 밖에서 먹는 삼겹살은 정말 맛있었다. 게다가 락시와 함께하는 자리여서 더욱 좋았다. 그렇게 1-2시까지 술을 마셨다. 새벽 시간에 다들 졸려해서 마시던 자리를 정리하고 텐트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다음날 어제 술자리의 여파인지 아침 7시를 넘겨서 잠에서 깼다. 일어나보니 다들 아침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메뉴는 어제와 비슷한 커리에 야채 볶음이었다. 한국인들은 사장님께서 준비하신 꼬고면에 밥을 말아먹었다. 물이 부족한 상황으로 제대로 씻지도 않고 잠에서 깨려니 힘들었다. 식사를 하고 나서 사장님은 스태프들과 함께 집수리를 하신다고 했다. 지붕이 가벼워서 강풍에 자주 들리니 고정하는 수리를 하신다고 하셨다. 그 사이에 나머지 사람들은 식재료를 사러갔다. 우리 일행이 먹을 것이 아니라 이 집에 사는 아이들이 먹을 것들이었다. 그 집에서 걸어서 40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서 식재료를 사다 먹는 아이들을 위한 배달 서비스였다. 그래도 가는 길이 너무나 좋아서 40분이 지루하지 않았다.
왕복 2시간 거리를 왔다 갔다 하면서 식재료도 챙겨 넣고, 집수리도 하고 나니 어느새 내려갈 시간이 되었다. 이곳에 살던 아이들도 건강확인과 병원진료도 필요했다. 더 늘어난 일행으로 버스를 타려니 더욱 힘들었다. 거기에 그곳에 살던 개도 따라 내려와서 버스에 태웠다. 그렇게 산길을 버스 지붕에 타고 내려오는 길은 정말 재밌었다. 신나게 노래도 부르면서 내려와서 숙소에 도착하니 어느새 5시 가까이 된 시간이었다. 숙소 스태프들도 모두 같이 소풍을 갔다 온 뒤라 식사 주문하기가 부담스러웠다. 그러던 참에 사장님께서 맛있는 닭백숙을 준비해주셨다. 그리고 더 맛있는 닭 죽까지 먹고 나니 배가 불러 잠이 절로 왔다.
2012/07/03 - [2012 네팔 여행] - 04/23 트레킹 마지막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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